[기사]기업인 남편과 지식인 아내가 세운 배움의 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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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건우 작성일17-06-26 17:12 조회7,292회 댓글0건본문
기업인 남편과 지식인 아내가 세운 배움의 터전
시류에 편승 않고 매진한 전인교육 50년 ... ‘선한 이웃’ 동성학교
“저는 이 학교에서 가르친 것보다 두 어르신에게 배운 것이 더 많습니다. 타인에게는 후하게, 자신에게는 박하게 사는 그들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두 내외가 마치 선을 베풀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습니다”
2006년부터 6년 동안 동성학교의 9대 교장으로 봉사한 김춘섭 원로목사가 생전의 설립자 부부를 떠올리며 전한 회고담의 일부다.
올해로 건학 쉰 돌을 맞은 동성학교(교장 이광제)는 오정섭 회장과 이재현 여사 부부가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이웃’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1967년 설립했다. 동성고등공민학교로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47회 동안 1156명의 ‘선한 인재’를 배출했다.
설립자의 아들이자 현 재단 이사장인 오수호 장로의 말대로 동성학교는 배우지 못한 설움이 가득한 기업인 남편과 최고 학부를 졸업한 지식인 아내가 뜻을 합쳐 세운 전인교육의 터전이었다.
초대 이사장 오정섭 회장은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으로 인해 초등학교만 졸업한 채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독학으로 공부한 그는 ‘가난 때문에 공부하지 못하는 학생이 없도록 하자’는 마음으로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생전의 그는 자식들에게 종종 배움에 대한 한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번은 어머니를 도와 물지게를 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교복을 입고 하교하는 친구의 모습에 속이 상해 남몰래 눈물을 훔친 일도 있었다고. 일찌감치 일을 시작한 그는 열심히 돈을 벌어 두 동생을 뒷바라지 했고, 모두 대학을 졸업시켰다.
선만강재 사원 시절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전신인 경성사범대학을 졸업한 이재현 여사와 결혼한 그는 대한민국 최초의 강재창호회사인 동방강건주식회사를 창업했다.
신의와 성실을 자본으로, 근검절약하며 모은 소중한 재산을 그는 1957년 장학재단을 세워 공부를 갈망하지만, 가난 때문에 학업을 이어갈 수 없는 학생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후원했다.
특히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된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공계 인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1959년 동성회(東醒會)를 설립, 1978년까지 총인원 약 300명(연인원 856명)의 경인지역 이공계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기부했다. 이 자금이 밑거름 되어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 훗날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이재현 여사는 원광회, 광주보육원을 설립하여 33명의 전쟁고아들을 친자식과 함께 양육했다. 그리고 학교를 세워 전쟁으로 갑자기 부모를 잃은 불쌍한 아이들을 모아 교육했다. 혹여나 그들이 배우지 못해 차별을 받을까 염려해서다. 그리고 인근에 사는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을 모아 동성고등공민학교를 시작했다.
새 교사가 건축을 시작하고, 임시로 연 첫 교실이 지금의 교회당이다. 당시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였지만,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했다. 한동안 전국 주요 삼육고등학교의 수석입학은 매년 동성학교 출신이 차지할 정도로 우수한 실력을 갖췄다. 열악한 환경과 처우에도 기꺼이 봉사하며 성심성의껏 지도한 수많은 교사들의 희생의 결과였다. 어느 선생님은 무보수로 몇 년을 봉사했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헌신했다.
동성학교는 특히 선지자의 가르침과 ‘땀 흘려보지 않은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고, 지도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는 설립자의 교육철학에 따라 노작교육을 강조했다. 봄에 파종한 작은 씨앗이 가을이면 어김없이 알찬 열매로 수확되는 모습을 보며 학생들은 땀의 결실과 창조의 섭리를 몸소 배웠다. 지금도 캠퍼스에는 추수를 앞둔 황금색 밀이 자라고 있다.
반세기를 걸어온 동성학교의 발걸음은 우직하다.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재정적으로 계속 지원해야 하는 자립형 학교의 운영은 어쩌면 무모해 보인다. 차라리 매달 여기저기 장학금을 기탁하면 칭찬 듣고, 대접받을 줄 뻔히 알면서도 금싸라기 같은 땅에 학교를 세우고, 매달 적잖은 운영비를 감수하는 모습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건학이념을 지키기 위해 정부의 보조도 마다한 채 약간의 타협도 허락하지 않는 모습이 때론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결단은 성경에 드리운 ‘선한 이웃’의 가치를 알고, 실현하기 위함이다. 믿고 맡겨진 자녀들을 봉사를 통한 삶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기꺼이 힘을 보태주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지식의 축적보다 나눔의 삶을 실현하고, 거기에서 기쁨을 누리는 사람을 만들기 위함이다. 날마다 기도하고 돌보며,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동성학교는 오늘도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이러한 설립목적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예수님을 본받아 묵묵히 내딛는 이 걸음이 측량할 수 없는 귀한 유산을 상속하고 있는 과정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범태 기자 / 2017-06-23 11:57:51
출처: http://www.adventist.or.kr/app/view.php?id=News&category=1&no=8119